Friday, March 11, 2016

#311東北大震災の痕-終わらない放射能問題、3월11일 동일본대지진의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


もう5年前のことになっている。3.11震災は私にとっても非常に衝撃だった記憶に頭に残っている。記憶の中で忘れにくい一つの出来事ではないかと思う。その記憶がなくなる前に書いておきたい。

2011年3月11日(金曜日)午後1時頃

日暮里駅発の成田空港行きの高速電車に乗り込んだ。車窓から見えてくる青空が非常に印象的だった。今日使う航空便は普段使っていない、チャイナエアーラインだった。
14時20分頃、CI101便午後16時半発、台北行きを乗るため、第二ターミナルに下りて、カウンターへ着。
14時35分頃、キャリアを預けることを言われたが、何と無く機内持ち込みにすることにした。
14時40分頃、普段直ぐ出国場に進めて行くが、その日は4階にある、レストラン街に上がり、うどんを注文した。
14時46分頃、注文を終わり、呼び出し機を貰いテーブルに座るところ、足のかかと部分よりジーンとした感じがし、瞬間その空間にいる人々と目があった。それから数秒たったない瞬間、カタカタ大きな音を初め、人々の叫びが聞こえた。私も慌てながら身をテーブルの下に隠した。暫く、カタカタ音が続いた。テーブル下には何時入ったか分らないうちに3,4人の人が一緒にいた。一人の女性は携帯で何処かに電話をかけている様子だった。
14時55分頃、音が止まり、揺れも落ち着く気がした。その際、放送じゃない、大きな肉声で”外に出てください”と声が聞こえた。人々は全力で外(3階バス、車が止まる高架路)へ走った。
身を起きてキャリアをもって私もその場を逃げて外に出た。揺れの影響だったのか、床には天井の破片が散らばれて、天井のスプリングクーラーは水を散らしていた。半袖姿の店の従業員たちはその際も人々を案内していた。

벌써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2011년 3월11일 금요일 오후2시46분, 동일본 지역에 일어난 진도8이상의 강진으로 일어난 그 시간을 떠올리며, 그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이글을 남기고자 한다.  

3월11일 금요일 오후 1시경,
 나는 타이페이 출장관계로 나리타공항으로 이동하기 위하여 도쿄 닛뽀리역에서 고속열차 스카이라인에  올랐다.  그날은 아무것도 못먹은 상태로 이동길에 올랐다. 공항까지 한시간안에 도착하므로 공항에서 간단히 식사를 할 생각이였다. 그날따라 차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너무도 파랬다. 
14시20분경,  나리타공항 2터미널에 하차하여, 차이나에어 체크인카운터에 도착했다. 
14시35분경,  평소와 달리 수화물 위탁의뢰를 하지 않은채 수속을 마쳤다.  
14시40분경,  츨국장을 바로 벗어나지 않고, 4층의 식당가로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했다.  오른쪽에 우동을 파는 가게로 이동하여, 우동을 주문했다.  

엄청난 흔들림. 

14시46분경, 우동주문을 마치고, 호출기를 들고 테이블에 짐을 푸는 순간, 발뒤꿈치에 전기가 흐르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몇초뒤, 이제껏 경험못한 엄청난 흔들림이 왔다.   천정의 철골이 흔들이는 소리가 마치 금방이라도 내려앉을들한 기세다.  너나 할것 없이 재빨리 테이블 밑으로 몸을 숨겼다.  테이블 밑에는 이미 3,4명이 있었으며, 한 여성은 전화로 열심히 지진상황을 어디론가 리포트 하고 있었다. 
14시55분경,  엄청안 흔들림은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다.  어디서인가 큰소리로 바깥으로 건물밖으로 나가라는 함성이 들렸다.  나도 케리어를 들고 밖으로 이동하려고 움직였다.  4층 식당가의 천정에서는 스프링쿨러가 터져서 물날리가 나고 있었다. (아래 사진)



15時05分頃、大勢の人々が一瞬3階の建物入り口である、高架部分で待機していた。その際、大きな余震が来た。止まっていたリムジンバースが左右に大きく揺れ始まった。高架橋もまるで飴みたいに揺れ始めた。バスは倒れそうな角度まで揺れたが、幸い倒れはしてなかった。二回目の恐怖の瞬間だった。
15時15分頃、警察など係り員は人々を下にある駐車場に移動させた。行列は末が見えないほど長かった。駐車場までは無事に大きな揺れはなかった。地面に立っているだけで、恐怖感は緩やかになっていた。
15時40分頃、駐車場は一瞬避難場所になって、入国したばかりの人々と混ぜることになった。
ヨーロッパなどから着く便が多いのか、ヨーロッパから東京に旅行に来た人々が多かった。中には新婚旅行でフランスから来たカップルもあった。その人々の顔には言うまでもなく不安そのものだった。
16時頃、空模様が変わってきた。暗くなる空と共に風もあり、肌寒く感じる天気だった。JALの職員たちに見られる人々は毛布を配っていた。数の限りがあるため、先ず老若者へ配るとの話をかけながら配っていたが、その際、中国から来た若者群(約6,7人)は列に割り込み毛布を受け取った。言葉が知らない様子ではない雰囲気だったが、取りあえず自分らの分を確保したいような勢いだった。
16時半頃、外にいたせいなのか、大きな余震はあまり感じてなかった。ただ、そこからは、生理的な苦痛がきた。そう考えたら、その日、まだ一食も食べてない、水もまともに飲んでない。それから、トイレに行きたい。駐車場の墨には簡易トイレが設置された。しかし、蛇列だ。荷物もあり、そこに並びに行くのも大変だ。
17時頃、雨がぽちぽち降り始めた。警察と関係者は車を移動しながら、案内放送を日本語と英語でしていた。今、庁舎1階の安全確認を行っている最中で、安全が確保出来次第そちらに案内する放送だった。暫く待つしかなかった。
17時半頃、列が動き始めた。一旦1階に移動することになった。一階に入り、椅子のところにかけた。外より風もないので良かったが、それも一瞬、建物の中からの余震は外より音もあり、もっと不安な感じがした。
18時頃、空港閉鎖の案内と共に詳しい出発予想時間は其々の航空会社へ訪ねる放送案内が流れた。共に、500mmのペットボトル水が配られた。共にRitzクラッカーのビスケットも配られた。その際、その中国人群はまた、人とは違う行動をした。人々は個々一個ずつとっているのに彼らは大量に取っていた。色んな人種が集まっている中、目立つ行動は言葉知らない人でも皆嫌だっと思った。

일단 바깥으로 대피

15시05분경, 많은 사람들이 순간 3층 출국장 입구가 있는,  고가 도로 부분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잠시뒤 또다시 엄청난 여진이 왔다.  정차해있던 리무진 버스가 좌우로 아주 심하게 흔들렸따. 마치 거인 걸리버가 장난이라도 하듯이... 그때 찍어놨던 동영상이 전부 소실이 되어서 아쉽다.  다행히 버스는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15시15분경, 여진이 소강상태에 이르자, 경찰은 사람들을 1층 주차장으로 유도하기 시작했다. 마치 피난민행렬과도 같이 사람들은 끝없이 줄지어 이동했다.  일단 지면으로 이동해서인지, 아까와 같은 공포감은 사라진듯 했다.
15시40분경, 출국장에서 이동해온 사람들이 모이고, 잠시뒤 입국장에서도 막 입국수속을 마친듯한 사람들과 직원들이 주차장으로 몰려 나왔다.  입국장에서 온 사람들중에는 외국인이 대부분이며, 아마 유럽쪽에서 비행편이 도착했는지 유럽에서 온 듯한 인파가 많았다.  행렬중에는 신혼여행왔다는 프랑스 커플도 있었다. 정말이지 잊을수 없는 허니문이 아닐까 싶다.  말도 안통하는 이곳에서 이런 난리를 만났으니 얼마나 불안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6시경, 하늘이 점점 어둡게 변하고 있었다.  아직은 초봄이라 햇살없는 날씨에 바람은 많이 차가웠다. JAL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기내용 모포를 가지고 나눠주기 시작했다.  넉넉치 않는 숫자이기에 나눠주며 안내방송을 한다.  노약자에게 양보를 부탁한다는 내용이다.  그때 어디선가 대여섯명의 중국인 젊은 그룹이 나타나 모포를 수령하기 시작한다. 영어를 못알아들은것 같기도 하고 우선 그들은 본인 확보에 나섰다. 
16시30분경,  외부에 있어서인지 그뒤 큰 여진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신것도 없는데 생리적인 현상이 왔다. 임시 화장실이 주차장 주변에 설치가 되어있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 상태이다. 긴 줄이 뱀꼬리처럼 늘어져 있었다. 짐을 맡길수도 없는 상태라 그냥 참고 있을수 밖에 없었다. 
17시경, 갑자기 어두운 하늘에서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경찰차는 차를 이동하면서 영어 일어로 안내방송을 했다.  지금 청사 1층의 안전점검중이므로, 안전이 확인되면 이동을 하라는 내용이였다. 

다시 실내로 이동

17시30분경,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앴다. 일단 1층 입국장으로 이동하는것 같았다. 1층으로 들어오니 아무래도 바깥보다는 따듯하고 조금은 편안한 느낌이였으나, 그것도 잠시, 실내에서느끼는 여진은 역시,  정말로 싫었다. 몸은 편해도 마음은 더 불안해 진것 같다. 
18시경, 공항폐쇄의 안내방송과 함께 오늘 출발은 없다는 방송이 나온다. 그리고 자세한 내용은 각각의 항공사에 문의하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500ml 생수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생수와 함께 비스켓도 함께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아까 그 중국인들이 또다시 다른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순서대로 각자 1개(아래 사진)씩만 뽑고 있는데 그들은 박스째 취한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여있고, 심지어 이런 힘든 상황에서 본인들만 생각하는 행동을보고 언어는 안통하지만 다들 어이 없는 표정들을 지었다. 



18時半頃、室内にあるテレビを見た。津波のニュースばかりだった。その際、初めて分った。津波が大変だったことを、それから、今回の地震がどれほど大きかったのかを知るようになった。
携帯の電波はもう死んでしるし、空港は閉鎖状態、どうしたら良いのか、すべてが暗くなる一方だった。
19時頃、隣に私の年齢に見える男性がいた。彼は香港から出張で着て、帰国する際だった。日本語は喋れなかった。私も一人だったので、その際、一人よりは友たちを作ることの方がいいと思い、その人と色んな話をした。先ず、彼の飛行運行状況を確認するため、臨時カウンターへ足を運んだ。それから、私も運行会社へ尋ねにいた。彼らは運行中止になったことしか話してなかった。明日、滑走路の安全が確認し、空港が再開するのであれば、運行する可能性は高いとの追加情報ももらった。
20時頃、今晩ここに泊まるしかないことが分ったので、無料で配る寝袋を受け取って、丁度開放した、3階に移ることにした。お店のシャッターは下りていて、店の前に寝袋を開いた。香港から来た彼と一緒だった。周りには日本人は殆どいなかった。
20時半頃、彼と先ず食料を確保するため、別行動をした。私は地下の店に足を運んだ。そこには既に食品になりそうなものはなくなってしまった。残っているのは野菜などがあった。それから、アルコールが必要だったけど、ビールなども全部売り切りだ。丁度、サワーが残っていたのでないよりはいいと思い買った。
21時頃、2,30分起きで余震は続いた。余震が来る度、音は物凄く感じた。シャッタの揺れ音と天井の揺れは最初恐怖だったが、どんどん鈍くなっていた。香港からきた彼と3階に戻り、収穫物を集め、ゆっくり食べ始めた。お酒が入ると少し気が緩くなってきた。彼はエンジニアで筑波にある日立へ出張にきたそうだ。初めての日本じゃかったけど、今回みたいに地震にあったのは初めみたいだ。
22時頃、一旦、落ち着いた気持ちで横になったが、座っている際と、横になった際の揺れはまた違う感じだ。揺れが大きく感じられた。このままでは眠れないのだ。隣には大型テレビからNHKニュースがずっと流れていた。ニュースは殆ど津波それから、都内でも電車が運転見合わせになり帰宅する人々が歩いて帰る様子など、東日本が大変なことだと放送していた。
23時頃、隣の東南アジアから来た人々が声をかけてきた。これから、弁当を配るのでとりに行かないかとのことだった。このターミナルには大予想1万人はいるはずなのに弁当は4千個ほど用意されているみたいだ。取りに行くのを諦めた。暫くしたら、隣の人々が我らの分まで取って来た。ありがたいことだった。しかし、食べる気はなかった。

엄청난 츠나미,

18시30분경,  입국장에 설치된 TV모니터에 눈이 갔다.  뉴스에서는 엄청난 츠나미의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전화도 불통이였고, 뉴스도 그 어떤 정보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처음 보게된 뉴스였다. 센다이 공항이 츠나미로 잠겨가는 모습이며, 그 모든것들을 집어 삼키는 해일의 위력을 모두들 넋을 잃고 보고 있었다.  지진피해보다 해일의 피해가 더 클듯 싶었다. 
19시경,  특별히 할수 있는것도 해야 할것도 없었다.  마침 옆에는 나와 비슷해 보이는 또래의 외국인 남자가 있어서 나는 말을 걸었다. 그는 홍콩사람으로 출장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한다. 일본어는 기본 인사정도만  하였기에 나는 그에게 도움도 될겸 그와  자연스레 함께 행동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을 처음 겪는 상황에서 혼자보다는 둘이 나을것 같은 생각이 든건 그도 마찬가지 였던거 같다.  나는 그의 비행스케줄등 자세한 내용을 알아봐주었다. 그를 실을 비행기가 홍콩에서 안도착했던거 같다.  내일 활주로가 열리면 운행이 가능할지 모른다는 이야길 전해 들었다.

공항의 노숙자가 되어.

20시경, 아무리 봐도 오늘밤 여기를 벗어나는것은 무리였다. 공항으로 들어오는길, 나가는길이 모두 통제된 상황이고 활주로는 폐쇄된 상황이라 고립 그 자체였다.  경찰들이 바깥에서 개인 침낭을 나눠주고 있었다. 나는 그를 데리고 함께 침낭을 받아들고 방금 안전확인을 마친듯한 3층으로 이동을 하기로 했다. 
20시30분경,  잠자리가 될만한 곳을 확보했다. 모든 상점들이 셔터를 내린 상황이라 그 앞에 자리를 잡았다. 콘센트가 있는 기둥은 벌써 사람들로 가득찼다.  아까 받은 비스켓 이외에 식량이 없는 상황이라 우리는 각자 식량을 구하러 나섰다. 지하로 내려가니 키오스크에는 먹을만한것은 야채밖에 남지 않았다.  맥주가 마시고 싶었지만, 구할수 없었고 그래도 캔사워를 구할수 있었다. 
21시경,  각자 구해온 식량을 풀어놓았다. 그리고 조촐하게 나마 사워도 한잔 하려는데  여진이 계속된다. 상점 셔터의 흔들림이 심리적으로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럴때 술이라도 없으면 정말 견디기 힘들겠다 싶었다.  그때 사진들을 찾을수가 없는게  너무 아쉽다.  3층 출국장 바닥은 완전 난민센터 같은 분위기 였고,  그렇게 사람들은 하나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22시경,  잠을 청하려 누웠지만,  모든게 불안전한 상황이라 그런지 잠은 쉽게 청할수 없었다.  홀 중앙에 있는 대형 TV에서는 계속해서 해일관련 뉴스가 나오고 그 장면들이 리플레이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정말 막막하다는 표현이 맞는듯 싶다.  도쿄에 있었더라도 아마 걸어서 집에 가야 할것 같았다. 도심도 모든 교통수단이 멈춰선 상황이라 모두들 패닉그 자체였다. 어쩌면 여기 이렇게 감금된 상황이 더 낳을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위안을 삼았다. 
23시경, 옆에 있던 동남아시아에서 온듯한 무리가 갑자기 분주해졌다.  지금 도시락이 도착해서 나눠준다고 한다. 그래도 어찌 어찌 도시락이 준비되었나 보다. 그런데 준비된 물량이 4천개 정도라고 한다. 얼핏봐도 여긴 만명은 넘을듯한 사람들이 있는데, 턱없이 부족한 도시락은 그렇게 금새 동이 났다. 그런데  옆 친구들이 우리것 까지 확보를 해주었다.  정말 식량의 귀중함을 느끼는 순간이였다. 식욕이 없기에 일단 넣어두고 다시 참을 청해 보았다.

3月12日(土)朝8時頃、寝るか寝てないか内に時間は流れてきた。殆ど寝てないまま、朝がきた。トイレでは歯を磨く人、顔を洗う人でいっぱいだった。
3月12日朝9時頃、条件つきの空港再開案内放送が流れた。先ず、彼の便を確認したが、彼はまだ、出発見込みが立ってないようだ。幸いなのか、私の便は折り返し便が昨日着いたので、整備次第出発出来そうな案内をもらった。
3月12日10時頃、チャイナエアー(CI)係り員は出発対象の人々をチェックインカウンターまで来る案内をした。そこから、搭乗する最終確認を行った。中には日本人が半分だった。彼らは搭乗をやめる人が多かった。別の搭乗券を貰ってなかった。どうせ、今朝出発予定の客も一人もいなかったので、タイムスリップしたようにCI101便はそのまま、時間遅れで出発する見込みだった。
3月12日12時頃、やっと、出国ドア側の扉が開けた。サインボードには別途表記もなく、普段開けていた出国ゾーンの扉も閉じられていた。チャイナエアー台北行きの人のみ出ることが出来た。後ろに香港からの彼に手を振りながら私もその列に入り、やっと20時間ぶりに出国が出来た。

다시 새날이 밝았다.

3월12일(토) 아침8시경,  간밤의 여진속에서 뒤척이며 새벽이 밝아왔다.  거의 잠들지 못한 밤이였다. 화장실에는 사람들로 붐빈다.  정말 난민피난소 같은 분위기다. 나리타공항이 이렇게 바뀔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한편 재밋는 경험이다라는 생각도 해본다. 
3월12일 아침9시경,  지난밤 특별히 추가된 피해는 없는듯 싶었다. 그리고 공항안내가 흘러나온다. 활주로를 오늘 개방한다는 내용이다.  그 친구는 출발대상이 아직 아닌듯 했으나, 내가 타고갈 비행기는 이미 탑승구에서 대기중인 상태였으므로 탑승이 가능하게 되었다. 
3월12일 10시경, 차이나에어 관계자로 부터 안내였다. 안내 카운터로 모여달라는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출발 인원을 확인하는 상태였다. 승객들은 반정도가 일본인이였다. 그리고, 타이페이로 가는 비행편 보다는 하와이로 출발하는 이용자가 많았다. 하와이편은  공항에 도착을 못해서 계속 연착 상태였으나, CI101편은 마지막 확인후 출국이 가능하다는 내용이였다.  101이용객중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탑승을 포기하는 상태였다. 
3월12일 12시경,  드디어 굳게 닫쳐있던 출국장 문이 열렸다. 101편 이용자들만 일단 출국대상인듯 일일이 티켓을 확인하며 출국장으로 내보내 주었다. 보딩티켓은 어제 그대로다. 3월11일 16시30분발.  아쉽게도 홍콩에서 온 친구와 작별시간이다. 그의 무사귀환을 빌며 그렇게 출국장으로 이동했다. 

3月12日12時半頃、イミグレーションを出たら、普段人々に溢れた廊下とお店は人の様子は見えなかった。幸い、搭乗口前にはうどんの店がオープンしていた。早速、店に入り軽く食事をした。何時間ぶりの暖かい食事だったのか、ちょっとホットした。食べる際も少し、余震は続いた。搭乗を急いた。機内はカラカラだった。帰国する台湾の人しかいない様子だった。
3月12日13時頃、飛行機が滑走路から離陸する瞬間、戦場から脱出する気持だった。そらから、成田周辺、それから、東京の都心が普通の様子で視野に入った。違う町を飛んでいる気分だった。それから、やっと安心したのか、自分も知らずに寝てしまった。
3月12日16時頃、台北桃園空港に無事に着陸した。イミグレーションでは普段と違って”辛苦了”と
挨拶をしながら、赤い封筒を渡した。中には無事帰国を祝いする手紙とゴールド紙に包んだチョコが入っていた。どれほど、世界からもニュースになっていたのかを実感する瞬間だった。その後、入国場を出たら、外には大勢のマスコミ群が取材に来ていた。その後、ホテルについて、暫く、台湾放送局の地震関連ニュースを見た。
それから、暫く、東京へ戻らず、ソウルに移動し、16日東京へ戻った。韓国ソウルでも募金活動をしていた。戻る日の東京の空は灰色でかなり欝な雰囲気だった。

나리타를 떠나며,

3월12일12시반경, 출국장에 도착하니, 너무나 썰렁한 분위기였다.  보통 여행객들로 가득차있을 공간이 텅텅 비어있었다. 마침 상점들은 몇몇 문을 열었다.  우동가게도 문을 열었다. 나는 가게로 달려가 우동한그릇을 뚝딱 비우고 서둘러 기내에 올랐다.  기내의 승무원도 승객도 모두들 어제의 악몽을 경험한 후라 조용한 분위기였다.  승객들은대부분 타이완 사람들 같았다. 
3월12일 13시경,  드디어 출입문을 닫고 게이트를 벗어난다. 활주로까지 택싱하는동안 부디 땅이 조용하길 바라고 있었다. 다시 여진이 와서 폐쇄되기라도 하면 정말 난감함 그자체 이기에 말이다. 그렇게 무사히 활주로에 정렬하고 바로 이륙하게 되었다.  하늘에서 보이는 풍경들은 그냥 일상의 그런 모습들이였다.  어제 화제가 났다던 치바쪽 가스탱크가 있는 쪽도 조용했다.  마치 전장을 떠나는 분위기였다. 
3월12일 16시경,  기내에서는 편하게 잠을 이룰수 있었다.  긴장이 풀려서 인지 눈을 뜨니 착륙태세로 들어섰고 무사히 타이베이 타오위엔공항에 착륙했다.  출장일정도 그 어떤 것도 할수 없기에 나는 일단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서 다시 티켓팅을 하였으나, 당일편은 연결이 안되었다.  공항이민국에서는 빨간 봉투를 나눠주었다, 그 속에는 금박지에 쌓인 동전 초콜릿이 들어있었다. 무사귀환을 축하하며 주는 듯 했다.  그리고 입국장을 벗어나자 엄청난 취재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지진후 첫 귀국편이라 더 더욱 매스컴의 관심은 큰듯했다.  

다시 서울로, 

일단 시내 호텔로 이동한뒤 나는 다음날 서울로 가는 비행편에 올랐다.  호텔 침대에 누었을때 마치 등이 흔들리는 착각이 들었다. 이게 트라우마 라는것일까,  TV에서는 계속해서 지진관련뉴스가 나오고,  정작 일본을 떠나왔는데도 불구하고 몸과 정신적 충격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것 같았다.   나는 서울서 대기하다가 회사와 연락이 되서 16일 다시 도쿄로 향했다.  

地元の新聞記事、震災地から無事帰国した人々が赤い封筒を持って手を振っている。


2016年3月今現在、
韓国のテレビ局が放送した、今の福島に関して取材したドキュメンタリー番組を見た。番組では
現在、原子力発電所の様子とその周りの被害状況を主にリポートしていた。放送によると、発電所半径20Kmにある、人と動物の放射能による被害が大変だということを伝えていた。
その中には、牛を放牧している人の被害の例や、放射能の被害が続くのに政府からは安全だと、問題ないだとすることに反発している様子が出た。放射能がそれほど間単に消えてしまう物質ではことは常識なはずなのに、それに関する日本政府の判断と行動は違うことも知らせた。
その中で、現在、福島市に増えている放射能廃棄処理物が町あっちこっちに散らばれている様子。その中、駅前などに設置している放射能数値が分るデジタル案内物が実際測量と違う表記になっているのがショックだった。デジタル案内塔の直ぐ近く10メトルもしない土で測った結果は安全な数値より何倍も危険な結果がでたが、真実は隠されていた。
一々例ををあげる必要もなく、今現在震災地では被害が続いているのが事実だが、日本のマスコミそれから、政府の対応はそれに答えていないようだ。
東京オリンピックなど大きな世界の人々が集まる行事を準備している中で、危険な要素を正しく伝えて行動するべきだと思うのだ。今、世界はZikaウィルスのことで騒いでいるんだ。ブラジルは今年夏季オリンピックに向けて万端の準備をすると発表しているんだ。それにしても多くの国では参加を慎重に考えているのだが、しかし、放射能に関する被害などそれに関する改善に関してはもう既に状況を改善したと安部は先日UNの演説で話した。
日本政府、現在安部政権のこのような、真実を隠す行動はこれ一つではないと思うのだ。決して、特定の国、人に関して中傷をするつもりはないのだ。正しいことを認識し、それに対する改善策を立っていくのが現状やるべきではないかと思うのだ。何時か、その隠したことは必ず誰かには被害になって戻るはずなので、本当に世界平和を願うのであれば、次の世代に安全且つ幸せな環境を渡していくべきだと思う。

2016년3월 지금 현재, 

지난주 JTBC방송에서 방영한, 후쿠시마에 관한 다큐를 보았다.  방송에서는 현재 파괴된 원전주위와 그에 따른 주변의 방사능 피해 실태를 보고하고 있었다.  방송에 의하면 아직도 20Km반경에는 사람과 동물이 피해가 심하다고 전했다. 그리고, 직접적인 동물의 피해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측은 안전하다, 문제없다는 반응에 반발하는 어느 농부의 모습과 그리고 후쿠시마시에서 방사능 폐기물로 인해 점점 약화되어가는 백혈구때문에 건강을 잃고 있는 어느 주부의 힘든 모습이 나왔다.  
 그리고 더욱 충격인것은  후쿠시마 전철역앞에 세워진 방사능 계측기의 내용이였다. 바로옆 10m정도의 땅위에서 측정한결과 그 숫자가 상이한것과, 결과치가 위험수치에 몇배나 달하는 그런 상황임에도 정부관계자는 그저 안전하다고 숫자로 게시하고 있는 상황이였다.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는 요즘 피해각 지역을 돌아보며, 다시 부활하는 모습들을 취재하여 5년을 맞는 동일본지진후의 모습을 방영하고 있다. 하지만  방사능에 대한 부분은 한마디도 언급이 없다.  직접피해를 본 당사자들은 말한다. 왜 방사능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하는가 라다.  체르노빌이 그러하였고, 방사능피해가 그렇게 쉽게 해결된다는게 상식적으로 힘든 상황임을 누구 보다도 잘 알고 있을 정부이기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일본정부가 진실을 감추고 있는게 어디 이뿐만이겠는가 만은,  어디까지나 현재 진행형에 있는 이러한 큰 문제속에서 해결보다는 감추기 급급하고 침묵하기에 일관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지나친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베는 말한다. 평화가 어쩌고 저쩌고....  이건 또다른 테러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2020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이런 환경적인 부분을 해결못한채, 눈속임으로 관광객을 유치한다면 그 여파는 안봐도 알것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그 날의 아픔들을 치유하고 다시 재건할수 있는건 현실을 직시하고, 진실을 알리고 그것을 인정하는것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当時営業を中止したTokyo Disney Landの模様 、町は憂鬱な灰色で暗い





羽田空港の様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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